국내 최초의 교통사고


△ 포드 모델 A


국내 최고의 교통사고 범인은 이완용의 아들


팔지 못할 것을 팔아 누린자. 훔쳐선 안될 것을 훔쳐 팔아 누린자. 이완용을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은 없다. 그가 직접 국내 최초의 교통사고(인사사고)를 낸 것은 아니지만, 그의 아들 '이항구' 가 바로 국내에서 최초로 교통사고를 낸 인물이다. 사고 내용 역시 끔찍하다. 1912년 이완용의 사위 홍운표와 이항구가 요정에서 술을 거하게 마시고서는 자동차에 기생을 태우고 동소문 밖으로 차를 운전하고 가다 7살 아이를 치어 다치게 했고, 7살 아이는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 최고의 권력가였던 그들에게 따질 수 있는 이들은 없었다. 지금 시대에도 억울한 사고와 처리가 많다. 시대가 크게 달라지지 않고,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한에 자동차는 언제 들어왔나?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뒤, 조선총독으로 취임했던 '데라우치' 가 자신의 차량과 함께 고종황제의 어차로 웨슬리의 리무진과 다임러의 리무진을 들여왔다. 고종황제의 6기통 다임러는 당시 전세계 10대밖에 없었던 귀한 차량이었다. 하지만,  이 귀한 자동차를 조선총독이 주문했다는 것은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선 1903년, 고종황제의 어차(御車)로 '포드 모델 A' 가 들어왔었다. 고종황제의 대한제국 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한 모델로, 1,668cc 로 8마력의 가솔린 엔진과 2단 변속기를 적용하였으며, 의전용으로 들여왔지만 시끄러운 소음과 왕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모양새라 하여 사용되지 않았었다. 당시에 외교관들이 갖고 온 차들이 있긴 했지만, 정식적으로 들여온 차량은 고종황제의 어차인 포드 모델A 가 처음이었다.




누가 자동차를 갖고 있었나?


당시에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었던 자들은 그야말로 권세가들이었다. 1911년도에 공식 등록된 자동차는 조선황실에 2대, 총독부 1대였으며, 1912년에 3대의 대절택시가 있었다. 지금의 택시와는 개념이 다른 것이, 한번 타는데 쌀 한가마니의 가격이었다. 그중 한대의 택시는 일본인 '오리이' 라는 청년이 포드차를 하나 갖고 와 대절택시를 시작했고, 다른 2대는 일본인 '곤도 미치미'가 들여와 시작한 것으로 국내 최초의 콜택시였다. 전화로만 부를 수 있었던 만큼 아무나 탈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 일제 강점기 대절택시, 한번 탑승 요금이 쌀 1가마니였다.


권력을 갖춘 비양심인 그들은 술을 마시고, 한 아이의 다리를 절단내는 사고까지 냈었다. 이완용의 아들과 사위가 낸 사고라는 것이 제법 잘 어울린다. 그럴법도 하다. 그 당시에 차를 가질 수 있었다라는 것 자체가 흔한일이 아니었으며, 못된짓을 골라하는게 똑같으니 말이다. 국내 최초의 교통사고(인사사고). 그리고 그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도 않았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팔지 못할 것을 팔고, 훔치지 못할 것을 훔치고, 다른이의 행복을 앗아가고도 제대로 된 처벌 없이 잘 지내는 사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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